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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학문

(국부론)시대적인 상황. 용어설명

by Stive Jo 2023.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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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상황

애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발간한 시대의 유럽국가들의 각 나라별로 시대적인 상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영국은 시민혁명(1642년~1649년)을 거쳤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중상주의 시대였다. 그 배경은 엘리자베스 1세(1533년~1603년) 여왕은 프랜시스 드레이크(1540년~1596년)라는 해적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드레이크는 노예무역을 하다가 해적으로 변신한 인물로서 스페인 선박을 대상으로 노예, 금, 은을 약탈하였다. 이 중에서 금과 은은 영국 왕실로 보냈다. 이렇게 영국왕실로 보내진 금과 은으로 영국 왕실은 부를 축척하였고 영국이 부강한 나라로 변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영국왕실은 드레이크를 귀족 작위의 직위를 내려줬다. 스페인은 아메리카 신대륙발견하여 그 땅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하면서 금과 은을 빼앗고 많은 양을 자국으로 가져갔다. 네덜란드는 1602년 상인들을 중심으로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인도와 향신료, 금과 은의 무역을 통해 국가의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이렇듯 유럽의 대부분의 여러 국가 들은 국가의 부는 금과 은의 양에 달려 있다는 중상주의였다. 프랑스는 주변국가들과의 전쟁으로 영토 확장과 식민지를 만들었고 이러한 영향으로 프랑스는 국가의 부는 토지에서 나온다는 중농주의(Physiocrats) 정책을 폈다.

용어설명

1. 중농주의(Physiocrats)18세기 프랑스에서 발생한 경제이론이다. 중농주의(Physiocrats)에 따르면 "국가의 부는 오로지 농업의 가치에 의해 발생하며 농산물의 가격은 높게 책정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중농주의(Physiocrats)는 노동의 결과 만들어지는 생산물을 국부의 원천이라고 하였다. 중농주의(Physiocrats)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이념을 만들던 시기는 농업에 의존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런 이유로 농업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라고 판단하였다. 즉, 중농주의자(Physiocrats)는 사회적 가치를 농업노동뿐이라고 생각하였다. 농업인만이 생산계급이고 상공업자는 농산물을 이전하거나 가공할 뿐 부를 낳지 않는 비생산 계급이라고 하였다. 내용 따르면 "국가의 부는 오로지 농업의 가치에 의해 발생하며 농산물의 가격은 높게 책정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중농주의(Physiocrats)는 노동의 결과 만들어지는 생산물을 국부의 원천이라고 하였다. 중농주의(Physiocrats)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이념을 만들던 시기는 농업에 의존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런 이유로 농업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라고 판단하였다. 즉, 중농주의자(Physiocrats)는 사회적 가치를 농업노동뿐이라고 생각하였다. 농업인만이 생산계급이고 상공업자는 농산물을 이전하거나 가공할 뿐 부를 낳지 않는 비생산 계급이라고 하였다. 참고내용으로 조선에서도 중농주의(Physiocrats)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토지 개혁을 주장했던 학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형원의 균전론 : 신분제별로 토지를 차등적인 재분배를 해야 한다. 이익의 한전론 : 한가정이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토지를 영업 전으로 정하고 영업 전 매매는 법으로 금지하고 나머지 토지는 매매를 허용하자 라는 내용이다. 정약용의 여전론 : 농사짓는 사람만 토지를 소유해야 한다. 그리고 소유는 마을단위로 공동 소유해야 한다. 그리고 공동으로 경작을 하고 노동량에 따른 분배를 해야 한다는 공동농장제도를 주장하였다. 박지원의 한전론: 토지소유 상한선을 설정하고 그 이상의 소유를 허락하지 않으면 수십 년 후 매매와 상속을 통해 토지가 균등해질 것이다.라는 내용을 주장하였다.

2. 중상주의(Mercantilism) : 16세기말부터 18세기에 걸쳐 유럽국가에서 국가의 부는 금과 은의 양이 많아질수록 부유해진다는 내용으로 국가 권력과 특권상인이 서로의 이득을 위해서 추진했던 정책이다. 중상주의 정책이 발전하여 오늘날 무역정책으로 되었지만 18세기 이전의 중상주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 후 식민지 지배를 하면서 빼앗았던 금과 은의 소유가 국부의 원천이라고 하였고 이후 무역 차액설을 토대로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증가시킴으로써 국부의 축척을 도모하려고 하였다. 이후 공업발전의 필요성을 깨닫고 약한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고 본국의 공업과 무역을 유리하도록 식민지 국가를 통제하는 식민지 정책을 펼쳤다. 다시 말해서 중상주의는 국가의 부를 금과 은을 국가가 보유하는 양으로 보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이 되어 통제를 하는 정책이다. 애담 스미스 '국부론'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언급하며 국가의 중상주의(Mercantilism)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흔희 우리가 알고 있는 중상주의(Mercantilism)는 상업장려로 알고 있으나 그 당시 한정된 재화, 발전하지 않은 산업구조에서 재화의 생산보다는 국가는 금과 은의 확보에만 주력했던 것이다. '국가에 금이 많으면 부유한 것이고 적으면 가난한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또 당시 영국은 특정 상업인에게만 특권을 주고 독점시장을 형성시켜 주었다. 특정상인에게 주어진 독점시장은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시장의 섭리에서 어긋난 정책이다. 이러한 정부의 개입은 개인을 발전을 저해시키고 기업은 노력하지 않고 많은 부를 가져갔기 때문에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산업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어 국가의 성장을 저해한 결과가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당시의 중상주의(Mercantilism)는 시장을 성장시키는 가장 큰 저해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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