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산업혁명은 국가가 부를 축적하는 방법, 기업이 기업을 성장시키는 방법, 노동자가 일을 하는 방법, 노동자가 공장에서 일하는 작업 포지션(Positon)이 바뀌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기계의 발명은 또 다른 발명을 만들었다. 화폐의 규모도 무역을 하면서 대단위도 커졌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경제적 요인과 비경제적 요인 두 가지로 나눠서 보면 다음과 같다.
경제학적 관점
1. 영국의 해외 무역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영국은 원자재와 열대작물에서 추출하는 원료를 스스로 생산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이 원자재 수입을 하지 않았다면 생산량이 저조하여 소득 수준이 낮아졌을 것이다. 반대로 그 당시 영국은 농촌 인력이 불안정 고용 상태였다.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도시는 풍부한 고용인력이 되었다. 이때 영국이 수출을 하지 않았다면 실업자 증가결과가 발생되었겠지만, 영국은 식민지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와의 무역이 매우 활발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이주한 노동인구가 풍부하였기 때문에 산업의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2. 농민의 경작지가 대규모화되면서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결과 농산물 생산량이 증가하였다. 농업 노동인력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농민의 경작지는 상대적으로 대규모로 커지면서 농업산업도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농업혁명은 농업 노동인구를 감축시키는 영향을 주게 되었고 일자리를 잃게 된 농업 노동인구는 더욱더 빠르게 도시로 이주하여 도시의 산업노동자로 투입이 되면서 산업화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3. 영국의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영국의 과학기술은 실용적인 과학기술로 평가한다. 특히, 기술자들과 생산자들이 긴밀히 협력하는 문화가 있어서 산업화를 이루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비경제적 관점
영국이 산업혁명이 이룰 수 있었던 조건은 사회적인 요소, 정치적인 요소, 문화적인 요소가 맞물려서 경제발전에 뒷받침이 되었다. 1. 사회적인 조건. ⓐ도시가 산업, 무역 도시로 성장하였다.ⓑ농업비중이 적고, 비농업 부문의 비중이 컸다. ⓒ해외 무역, 교육의 비중이 높았다. 천연자원(석탄)이 풍부하였다. 석탄은 자동화 기계를 움직이는 연료로 사용하였다. 다량의 석탄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기술이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석탄은 산업혁명의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다"라는 견해도 있다. 왜냐하면 에너지 공급원은 그 당시에도 수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 자원이 부족하면 부족한 자원을 메우기 위해서 또 다른 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2. 영국의 사회적 가치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국가와 달랐다. ⓐ영국은 부 와 권력이 강한 나라였다. 부유한 사람은 사회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때문에 기업가들은 부를 얻기 위해 장시간 일을 하고 끊임없는 개발을 하는 등 기업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3. 영국 정부의 사회적 구조와 정치적 요소. 영국은 일찍부터 특허권 법 제정과 공공재정이 마련되어 있어서 재산권이 보호가 되었다. 왕실도 국민들의 재산을 수탈하는 일이 적었다. 재산권 보호는 법적인 보호와 국민 치안도 발전시켰다. 이러한 재산권 보호는 투자할 때 안정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투자자는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4. 영국 정부의 강력한 법률 규제와 산업 저해 요인 폐지등 적극적인 지원. 기계의 발전은 많은 도시노동자를 실업자로 만들었다. 이러한 원인으로 폭동을 일어키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영국정부는 강하게 진압을 하였다. 그리고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법률과 규제를 폐지하였다. 또한 노동조합도 불법화하였다. 이러한 영국 정부의 조치는 산업혁명이 빠르게 확산해 나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5. 영국의 복지제도 중 구빈제도가 있었다. 농촌노동자들이 도시로 이주하기 위해서는 이주비용과 일자리를 찾는 기간등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비 경제활동을 하는 기간 동안 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영국 정부에서는 1601년 구빈법을 재정하여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빈곤자에 대한 국가의 구제제도를 실해에 옮겼다.
결론
영국의 산업혁명은 사회적, 문화적, 지리적, 정치적 요소가 맞물려서 만들어낸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산업혁명 이전부터 교역을 통해 축적된 재화와 증기기관차의 발명으로 공장의 생산방식을 바꾸어 갔다. 정부에서는 산업 장려를 위해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법률을 폐지하고 기업이 생산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어 나갔다. 농촌의 대규모 농작물 재배는 오히려 수확량을 늘리고 노동인구를 감소시킬 수 있었던 계기였다. 농촌 노동인구가 도시의 공장 노동자로 이동되면서 풍부해진 영국 노동 시장은 탄력을 받으며 성장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애담 스미스는 기업의 분업은 풍부해진 노동시장이 만들어지면서 분업의 효과가 커진다고 하였다. 당시 영국은 분업을 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증가했다. 분업은 노동자에게 전문성을 만들어 주었다. 결국 기업의 매출 성장은 국가의 부를 만들어 준다는 애담 스미스의 경제이론을 뒷받침 해준 산물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부, 국회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한번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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